시대 해설 · P8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 두 번의 세계대전 사이에서의 35년
발행 2026-08-02
P8은 1910년 국권 상실부터 1945년 광복까지 35년이다. 한국사 컬럼과 세계사 컬럼이 이만큼 직접적으로 맞물리는 시대는 없다. 독립운동의 국면 전환이 거의 예외 없이 국제 정세의 변동과 함께 일어났기 때문이다.
한반도: 세 국면으로 나뉘는 35년
1910년대는 헌병경찰을 앞세운 무단통치기다. 토지조사사업으로 토지 소유 관계가 재편되며 많은 농민이 소작농이나 이주민이 됐다. 1919년 3·1운동은 이 시기의 분수령이었다. 전국적 비폭력 시위가 몇 달간 이어졌고, 그 결과 통치 방식이 이른바 문화통치로 바뀌었으며,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졌다.
1920~30년대에는 운동의 방식이 갈라진다. 봉오동·청산리 전투 같은 무장 투쟁, 물산장려운동과 민립대학 설립운동 같은 실력양성운동, 신간회 같은 좌우 합작 시도, 의열단·한인애국단의 의열 투쟁이 병행됐다. 1930년대 후반부터는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으로 전시 동원이 강화되며 민족말살정책(창씨개명·신사참배 강요), 강제 징용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이어진다. 한 시대 안에서도 국면마다 사람들이 택할 수 있는 방법 자체가 달랐다는 점을 놓치면 이 시기를 평면적으로 읽게 된다.
같은 시기 세계: 자결권과 전쟁 사이
1914년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은 1918년 끝났고, 윌슨의 민족자결주의가 전후 질서의 명분이 됐다. 3·1운동이 1919년 3월에 일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파리강화회의와 자결주의 담론, 그리고 도쿄 유학생들의 2·8 독립선언이 직접적인 배경이었다. 다만 자결주의는 사실상 패전국의 식민지에만 적용됐고, 승전국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은 그 대상이 아니었다. 국제적 명분과 실제 적용 범위의 간극이 이 시대 독립운동이 마주한 벽이었다.
1929년 대공황은 각국을 블록 경제와 전체주의로 몰아갔고, 일본의 만주 침략(1931)과 중일전쟁(1937)으로 이어졌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1941년 태평양전쟁이 시작되면서 임시정부는 대일 선전포고를 하고 한국광복군을 편성한다. 1943년 카이로 선언에서 연합국이 한국의 독립을 처음으로 명문화한 것도 이 전쟁의 산물이다. 결국 1945년 광복은 독립운동의 축적과 연합국의 승리가 함께 만든 결과였고, 그 두 요인의 비중을 어떻게 볼 것인가가 이후 오랜 논쟁의 출발점이 된다.
두 흐름이 실제로 만나는 지점
가장 직접적인 접점은 1919년이다. 3·1운동은 같은 해 중국의 5·4운동, 인도의 비폭력 저항 운동과 함께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아시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온 반제국주의 운동의 하나로 읽힌다. 서로 직접 연락한 것은 아니지만, 같은 국제적 조건에 대한 비슷한 반응이었다.
두 번째는 이산이다. 토지를 잃거나 일자리를 찾아 만주·연해주·일본·하와이로 떠난 사람들이 이 시기에 급증했고, 그 이동이 독립운동의 근거지(간도의 무장 조직, 상하이의 임시정부, 미주의 후원 조직)를 만들었다. 오늘날 재일 한인 사회와 고려인 사회의 뿌리도 여기에 있다.
저항의 형태는 왜 갈렸나
3·1운동 이후 독립운동은 하나로 모이는 대신 여러 갈래로 나뉜다. 흔히 노선 갈등으로만 설명되지만, 갈라진 진짜 이유는 3·1운동이 확인시켜 준 사실에 있었다. 전 민족이 비폭력으로 목소리를 냈는데도 국제 사회는 움직이지 않았고 통치는 유지됐다. 그렇다면 다음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세 갈래로 갈린 것이다.
무장투쟁은 만주와 연해주를 근거지로 삼았다. 1920년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성과를 냈지만 일본군의 보복과 근거지 상실로 지속이 어려웠다. 외교는 임시정부가 택한 길로, 파리와 워싱턴에서 승인을 얻으려 했으나 열강은 일본과의 관계를 우선했다. 실력양성은 교육과 산업으로 힘을 기르자는 노선이었는데, 물산장려운동처럼 합법 공간 안에서 움직이다 보니 총독부의 통제 범위를 벗어나기 어려웠다.
세 노선 모두 결정적 한계를 안고 있었고, 그래서 1927년 신간회처럼 좌우를 아우르는 통합 시도가 나왔다가 4년 만에 해소된다. 같은 시기 인도의 국민회의가 간디를 중심으로 단일한 축을 유지했던 것과 대비된다. 차이의 한 요인은 합법 공간의 크기다. 영국령 인도에는 제한적이나마 선거와 의회가 있었지만 조선에는 그런 통로 자체가 없었고, 그래서 운동은 국외로 나가거나 지하로 들어가야 했다.
'식민지 근대화'라는 논쟁을 어떻게 다룰까
이 시기를 두고 철도가 놓이고 공장이 세워졌으며 취학률이 올랐다는 통계를 근거로 근대화가 진행됐다는 주장이 제기돼 왔고, 이에 대한 반론도 축적돼 왔다. 이 사이트는 이 논쟁의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다만 연표를 다루는 입장에서 짚어둘 것이 있다. 같은 통계가 무엇을 증명하는지는 질문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이다.
'조선에 근대적 시설이 늘었는가'와 '그 시설이 조선인의 삶을 개선했는가', '그것이 누구를 위해 설계됐는가'는 서로 다른 질문이고, 각각 다른 자료를 요구한다. 철도 노선도가 대륙 침략의 병참선을 따라 그려졌다는 사실, 1930년대 후반 공업화가 전쟁 수행과 묶여 있었다는 사실, 고등교육 기회가 극도로 제한됐다는 사실은 첫 번째 질문의 답과 충돌하지 않으면서 나머지 두 질문의 답을 바꾼다.
그래서 이 연표는 P8 구간에서 산업·제도 항목과 수탈·동원 항목을 함께 싣는다. 어느 한쪽만 실으면 그것은 요약이 아니라 편집이다. 판단은 읽는 사람의 몫이되, 판단에 필요한 재료를 빠뜨리지 않는 것이 연표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결론을 대신 내려 주는 연표는 이미 연표가 아니다.
이 시대를 다룬 영화·드라마
〈암살〉(2015)은 1930년대 경성과 상하이의 의열 투쟁을, 〈파친코〉(2022~)는 일제강점기에 시작해 현대까지 이어지는 재일 한인 4대의 삶을 다룬다. 세계사 쪽에는 〈1917〉(2019)과 〈쉰들러 리스트〉(1993)가 놓인다. 〈암살〉과 〈쉰들러 리스트〉는 각각 1933년과 1943년을 다루는데, 같은 10년 사이 유럽과 동아시아에서 국가 폭력이 어떤 형태로 작동했는지를 나란히 보여 준다. 〈파친코〉는 이 시대가 1945년으로 끝나지 않고 이후 세대의 삶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한눈에 보기
| 연도 | 한국사 | 세계사 |
|---|---|---|
| 1910년 | 국권 상실 · 무단통치 | — |
| 1919년 | 3·1운동 · 임시정부 수립 | 제1차 세계대전 종전(1918) · 파리강화회의 |
| 1920년 | 봉오동·청산리 전투 | — |
| 1929년 | 광주학생항일운동 | 대공황 |
| 1937년~ | 전시 동원 · 민족말살정책 | 중일전쟁 · 제2차 세계대전(1939) |
| 1945년 | 광복 | 제2차 세계대전 종전 |
이어서 읽기
참고 자료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사연대기 — 일제강점기
- 고등학교 세계사 교육과정 — 두 차례 세계대전과 전간기
사실 관계는 위 자료를 따르며, 비교와 해석은 이 사이트의 것입니다.
이 시대의 다른 사건들도 연표에서 직접 비교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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