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클
같은 시대를 두 지역에서 읽다
발해가 자리를 잡던 8세기, 유라시아는 반대쪽 끝에서도 새 질서를 세우고 있었다
698년 발해 건국부터 926년 멸망까지, 같은 세기에 압바스 혁명·탈라스 전투·바그다드 건설·카롤루스 대관이 이어졌다. 8세기 유라시아를 한 줄로 놓고 읽는다.
조선과 일본은 같은 함포를 마주했다 — 왜 한쪽만 8년 만에 체제를 바꿨나
1853년 페리 내항과 1866·1871년 양요는 같은 종류의 압력이었다. 일본은 1868년 메이지 유신으로, 조선은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응답했다. 그 8년의 차이가 어디서 왔는지 비교한다.
1987년 6월은 혼자가 아니었다 — 마닐라·타이베이·서울, 그리고 베를린
1987년 6월 항쟁을 필리핀(1986)·대만(1987)·동유럽(1989)과 같은 물결 위에 놓고, 무엇이 공통 조건이고 무엇이 한국에 고유했는지 가른다.
흑사병이 유럽을 지울 때, 고려는 무너지고 있었다 — 14세기의 두 붕괴
1340년대 흑사병과 고려 말의 왜구·홍건적·원 쇠퇴를 나란히 놓는다. 같은 세기의 두 붕괴가 각각 무엇을 낳았는지, 그리고 두 붕괴가 왜 무관하지 않은지 살핀다.
"고증이 좋다"는 말은 대개 옷 이야기다 — 역사 영화 37편으로 본 고증의 네 층위
이 사이트의 영화 연표 37편을 고증의 네 층위(연대·물질·사고방식·서사)로 갈라 분석한다. 대중이 고증을 칭찬할 때 실제로 무엇을 보고 있는지 따진다.
13세기의 세 가지 대답 — 고려는 버텼고, 맘루크는 막았고, 유럽은 운이 좋았다
몽골의 팽창은 고려의 강화도 항전과 십자군의 종말을 하나의 원인으로 묶는다. 같은 힘 앞에서 세 지역이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살아남았는지 비교한다.
훈민정음과 구텐베르크는 7년 차이다 — 같은 문제, 다른 해답
1443년 훈민정음 창제와 1450년경 구텐베르크의 활판 인쇄. 지식의 문턱을 낮춘 두 발명이 왜 전혀 다른 사회적 결과를 낳았는지 비교한다.
증기기관과 세도정치 — 같은 시기, 두 사회는 무엇을 최적화하고 있었나
영국이 증기기관으로 생산을 재편하던 1800~1863년, 조선은 세도정치 아래 있었다. "정체" 서사를 그대로 쓰지 않고 두 사회가 각각 무엇을 잘하고 있었는지 따진다.
전쟁 뒤 200년의 평화는 어떻게 유지됐나 — 통신사와 베스트팔렌
임진왜란 직후 재개된 조선통신사와 30년 전쟁 뒤 베스트팔렌 체제를 나란히 놓고, 큰 전쟁 다음의 평화가 무엇으로 유지되는지 비교한다.
1950년의 한반도는 예외가 아니었다 — 냉전과 탈식민이 겹친 자리
한국전쟁을 냉전의 대리전인 동시에 탈식민 전쟁으로 읽는다. 인도 분할, 인도차이나, 인도네시아와 나란히 놓으면 분단이 한반도만의 사건이 아님이 드러난다.
676년의 통일은 무엇을 주고 얻은 것인가 — 신라와 당 제국의 거래
신라의 삼국통일을 당 제국의 세계 질서 편입이라는 관점에서 읽는다. 나당전쟁은 그 편입 조건을 다시 협상한 과정이었고, 티베트 전선이 그 협상을 가능하게 했다.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 세계는 전쟁의 폐허 위에서 새 질서를 짜고 있었다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은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파리강화회의의 민족자결주의와 맞물려 있다.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건널 때, 조선은 『경국대전』으로 나라의 틀을 다졌다
1492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도착 무렵, 조선은 『경국대전』 완성으로 통치 체제를 정비하고 있었다.
병자호란의 굴욕 뒤에는 명·청 교체라는 동아시아 지각변동이 있었다
1636년 병자호란과 삼전도의 굴욕은 청의 건국, 명의 멸망으로 이어지는 동아시아 질서 재편의 일부였다.
조선이 천주교를 박해할 때, 유럽은 이미 종교와 국가를 분리하고 있었다
19세기 조선의 신유박해·병인박해가 이어지던 시기, 유럽에서는 근대화와 함께 종교와 정치의 관계가 재편되고 있었다.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난 1894년, 조선을 둘러싼 열강의 각축이 시작됐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과 갑오개혁은 청일전쟁, 나아가 서구 제국주의가 동아시아를 압박하던 흐름 속에서 일어났다.
프랑스가 혁명으로 왕정을 무너뜨릴 때, 조선의 정조는 탕평으로 개혁을 이끌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시기, 조선의 정조는 규장각을 세우고 탕평책으로 개혁 정치를 펼쳤다.
고조선이 세워질 때, 세계는 청동기 문명이 한창이었다
기원전 2333년 고조선 건국을 이집트 문명, 함무라비 법전 등 세계 청동기 문명과 나란히 놓고 비교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무렵, 유럽은 무적함대를 막 무너뜨렸다
1592년 임진왜란 발발 직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본 통일과 영국의 에스파냐 무적함대 격파가 있었다.
예수가 태어난 그 시대, 로마는 평화를 누리고 한반도는 삼국의 여명기였다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기원전 6~4년 무렵, 로마는 아우구스투스의 평화를 누렸고 한반도는 삼국이 갓 세워진 시기였다.
광복의 기쁨 뒤에 냉전이라는 새로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1945년 8·15 광복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찾아왔지만, 곧이어 냉전과 분단이라는 새 과제를 남겼다.
루터가 종교개혁의 불씨를 당길 때, 조선의 조광조는 개혁에 실패했다
1517년 루터의 95개조 반박문과 비슷한 시기, 조선에서는 조광조가 개혁을 추진하다 기묘사화로 좌절했다.
삼국이 나라의 기틀을 다질 때, 로마는 황제의 시대를 열었다
신라·고구려·백제가 잇달아 건국되던 기원전 1세기, 로마는 공화정을 끝내고 아우구스투스의 제정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