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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해설 · P4 고려

고려 — 십자군과 몽골이 세계를 흔들 때 한반도가 견딘 방식

고려사는 침략의 연속처럼 보이지만, 그 침략들의 배후에는 유라시아 전체를 재편한 하나의 거대한 힘이 있었다.

발행 2026-08-02

P4는 918년 왕건의 고려 건국부터 1392년 조선 건국까지의 474년이다. 이 시대를 관통하는 질문은 하나다. 중간 규모의 국가가 대륙의 초강대국 옆에서 어떻게 살아남는가. 고려의 대외 정책은 그 질문에 대한 400년짜리 답변이라고 볼 수 있다.

한반도: 세 번의 침입과 세 번의 다른 해법

거란(요)의 침입에 고려는 서희의 외교 담판(993)으로 강동 6주를 얻고, 강감찬의 귀주대첩(1019)으로 군사적 해법을 함께 썼다. 여진(금)이 강성해지자 이자겸 정권은 사대 관계를 받아들여 전쟁을 피했고, 이는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 같은 반발을 낳았다. 몽골의 침입(1231~) 앞에서는 강화도로 천도해 30여 년을 버텼지만 결국 강화하고, 이후 약 80년간 원의 간섭을 받는다. 같은 나라가 외교·전쟁·항전·복속이라는 네 가지 카드를 상황에 따라 바꿔 쥔 것이 고려 대외사의 실체다.

내부에서는 1170년 무신정변이 분기점이 된다. 문벌 귀족 사회가 무너지고 최씨 정권이 60년간 이어지며, 그 아래에서 만적의 난 같은 하층민의 봉기가 일어난다. 사상 면에서는 의천의 천태종과 지눌의 조계종이 불교를 재정비했고, 고려 말에는 성리학이 들어와 신진사대부의 이념적 무기가 된다. 이 성리학이 결국 조선 건국의 명분이 되므로, P4의 마지막은 P5의 시작과 직접 이어진다.

같은 시기 세계: 몽골이라는 단일 변수

1096년 시작된 십자군 전쟁은 200년간 지중해 동부를 전장으로 만들었고, 그 부산물로 동방 물산과 지식이 유럽에 흘러들었다. 그러나 이 시대 세계사의 진짜 주인공은 몽골이다. 1206년 칭기즈 칸의 등장 이후 몽골은 중국·중앙아시아·러시아·서아시아를 차례로 정복해 역사상 가장 넓은 육상 제국을 세웠다. 그 결과 유라시아 동서를 잇는 교통로가 하나의 권력 아래 놓였고, 마르코 폴로 같은 인물이 원의 궁정까지 갈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졌다.

몽골의 통합은 물자와 사람만 옮긴 것이 아니다. 14세기 중반 유럽을 덮친 흑사병은 이 교역로를 따라 퍼진 것으로 널리 이해된다. 유라시아가 하나로 연결된 대가를 전염병이라는 형태로 치른 첫 사례였던 셈이다. 고려가 원 간섭기를 겪던 바로 그 시기, 유럽은 인구의 3분의 1을 잃고 중세 질서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두 흐름이 실제로 만나는 지점

고려와 세계가 만나는 가장 유명한 접점은 인쇄술이다. 몽골 침입 중에 판각한 팔만대장경 (1236~1251)은 목판 인쇄의 정점이고,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찍은 『직지심체요절』은 현존 최고(最古)의 금속활자 인쇄본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돼 있다. 구텐베르크의 활판 인쇄(1450년경)보다 70여 년 앞선다. 다만 두 기술이 사회에 미친 파장은 달랐다 — 유럽의 활판 인쇄가 종교개혁과 결합해 대중적 정보 혁명을 일으킨 반면, 고려·조선의 금속활자는 주로 관에서 소량의 서적을 찍는 데 쓰였다. 이 차이는 기술의 우열이 아니라 기술이 놓인 사회 구조의 차이로 읽어야 한다.

또 하나는 원 간섭기의 문화 교류다. 고려양(고려 풍속)이 원에서 유행하고, 몽골식 복식과 음식이 고려에 들어왔다. 소주가 이 시기에 전래됐다는 설이 널리 알려져 있다. 정치적 예속의 시기가 동시에 문물 교류의 시기이기도 했다는 점은 이 시대를 단순한 수난사로만 읽을 수 없게 만든다.

같은 시기 두 무신정권, 갈라진 결말

1170년 고려에서 무신정변이 일어나 문신 귀족 사회가 무너졌다. 그로부터 22년 뒤인 1192년, 일본에서는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가마쿠라 막부를 연다. 두 사건은 놀랍도록 닮았다. 무력을 쥔 집단이 기존 문신 지배층을 밀어내고 실권을 잡았고, 형식적으로는 왕이나 천황이 남았다. 그런데 이후 700년의 진로는 정반대로 갈렸다.

일본에서는 막부가 제도로 굳었다. 가마쿠라·무로마치·에도로 이어지며 무사 정권이 통치의 표준 형태가 됐고, 천황은 권위만 남은 존재로 정착했다. 고려에서는 정반대였다. 최씨 정권은 60년간 이어졌지만 독자적인 통치 기구를 끝내 완성하지 못했다. 정방과 도방 같은 사적 기구를 두면서도 국가 운영은 여전히 기존 관료제에 기댔고, 1258년 최씨 정권이 무너지자 왕과 문신 관료제가 곧바로 복원됐다.

차이를 만든 것은 토지와 관료제였다. 일본의 무사는 자기 영지를 직접 지배하는 지방 권력이었고, 그래서 막부는 그 지방 권력들의 연합으로 설 수 있었다. 반면 고려의 무신은 중앙 군인이었고 녹봉과 전시과라는 국가 분배에 의존했다. 스스로 먹고살 기반이 없는 권력은 자신이 뒤엎은 체제를 다시 세워야 한다. 무신정권이 과거제를 폐지하지 않고 오히려 문신을 계속 등용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벽란도와 '코리아'라는 이름

고려사를 침략의 연속으로만 읽으면 놓치는 것이 있다. 이 시대는 한국사에서 손꼽히게 개방적인 시기였다. 예성강 하구의 벽란도는 송·일본은 물론 아라비아 상인까지 드나든 국제 무역항이었다. 『고려사』에는 대식국(아라비아) 상인이 수은과 향료를 바쳤다는 기록이 여러 차례 나온다. 오늘날 서구권이 한국을 Korea라 부르는 것도 이 시기 고려의 이름이 아라비아 상인을 거쳐 서방에 알려진 결과다.

사상 면에서도 그렇다. 조선이 성리학이라는 단일 이념으로 사회를 정렬한 것과 달리, 고려에서는 불교와 유교가 각각의 영역을 나눠 가졌고 풍수지리와 도교, 토착 신앙까지 공존했다. 팔관회는 그 혼합을 보여주는 국가 행사였고, 국제 사절과 상인이 함께 참여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하나의 정답을 강제하지 않는 체제가 이 시대의 특징이며, 몽골이라는 거대한 충격을 겪고도 왕조가 살아남은 배경에는 이런 유연함도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시대를 다룬 영화·드라마

〈킹덤 오브 헤븐〉(2005)은 12세기 말 예루살렘을, 〈마르코 폴로〉(2014~)는 13세기 원 제국의 궁정을, 〈브레이브하트〉(1995)는 13~14세기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을 다룬다. 특히 〈마르코 폴로〉는 고려가 원 간섭기를 겪던 바로 그 궁정을 배경으로 하므로, 연표에서 이 작품을 누르고 한국사 컬럼을 보면 같은 제국의 두 얼굴—베네치아 상인이 본 화려한 대칸의 궁정과, 그 궁정에 공녀와 공물을 보내야 했던 고려—이 한 줄에 놓인다. 이 사이트에서 영화 컬럼이 가장 유용해지는 순간이 이런 대비다.

한눈에 보기

연도한국사세계사
918년고려 건국
993 · 1019년서희의 담판 · 귀주대첩십자군 전쟁 시작(1096)
1170년무신정변
1231년~몽골 침입 · 강화 천도몽골 제국의 팽창(1206~)
1236~1251년팔만대장경 조성
1347년경유럽 흑사병
1377년『직지심체요절』 금속활자 인쇄
1392년고려 멸망 · 조선 건국

이어서 읽기

참고 자료

사실 관계는 위 자료를 따르며, 비교와 해석은 이 사이트의 것입니다.

이 시대의 다른 사건들도 연표에서 직접 비교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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