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대 해설 목록

시대 해설 · P3 남북국시대

남북국시대 — 통일신라와 발해, 그리고 세 개의 세계 제국

한국사에서 가장 국제적인 시대를 꼽으라면 이 시기가 빠지지 않는다. 문제는 그 국제성이 교과서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발행 2026-08-02

P3은 신라가 당군을 몰아낸 676년부터 신라가 고려에 항복한 936년까지다. 남쪽의 통일신라와 북쪽의 발해가 나란히 존재했다고 해서 남북국시대라 부른다. 260년 남짓한 이 구간은 한국사에서 상대적으로 조용한 시대로 취급되지만, 세계사 컬럼을 함께 놓고 보면 인상이 완전히 달라진다.

한반도: 통일 이후의 재설계

전쟁이 끝난 뒤의 과제는 늘 통치 구조다. 신라는 9주 5소경으로 지방을 재편하고, 국학을 세워 유학을 가르치고, 관료를 뽑는 독서삼품과를 시행했다. 골품제라는 신분 장벽이 끝내 무너지지 않아 6두품 지식인들이 벽에 부딪혔다는 점이 이 시대의 구조적 한계로 자주 지적된다. 최치원이 당에 유학해 빈공과에 급제하고 돌아왔지만 뜻을 펴지 못한 일화는 그 한계를 압축해 보여 준다.

발해는 698년 대조영이 세운 뒤 8세기 선왕 대에 "해동성국"이라 불릴 만큼 넓은 영역을 다스렸다. 고구려 계승 의식을 내세우면서도 당의 제도를 받아들이고 일본과 교류한, 전형적인 다중 외교 국가였다. 9세기 후반부터 신라는 진골 귀족의 왕위 다툼과 지방 호족의 대두로 흔들리고, 견훤과 궁예가 각각 후백제·후고구려를 세우며 후삼국시대로 넘어간다. 발해는 926년 거란에 무너진다.

같은 시기 세계: 세 문명권의 동시 성립

이 구간의 세계사는 유난히 대칭적이다. 동아시아에서는 당이 장안을 중심으로 국제도시 문화를 꽃피웠고, 서아시아에서는 622년 헤지라 이후 이슬람 세력이 급속히 확장해 8세기에 우마이야·아바스 왕조의 대제국을 이뤘다. 유럽에서는 프랑크 왕국이 서로마의 공백을 메우며 800년 카롤루스 대제의 대관으로 새로운 기독교 제국을 선언한다. 세 문명권이 거의 동시에 각자의 질서를 완성한 것이다.

이 시기 유라시아를 하나로 묶은 것은 육상·해상 실크로드였다. 당의 장안에는 페르시아·소그드 상인이 드나들었고, 아바스 왕조의 바그다드는 그리스 고전을 아랍어로 옮기는 번역 운동의 중심이 됐다. 신라 상인 장보고가 청해진을 근거로 한·중·일 삼각 무역을 장악한 것도 이 국제 교역망의 동쪽 끝에서 일어난 일이다.

두 흐름이 실제로 만나는 지점

아랍 지리학자 이븐 쿠르다드비의 기록에 신라(al-Sila)가 금이 많은 섬나라로 언급된다는 사실은 이 시대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한반도의 이름이 이슬람권 문헌에 남았다는 것은, 신라가 당을 매개로 유라시아 교역망에 간접적으로 연결돼 있었다는 뜻이다. 경주에서 나온 서역계 유리그릇과 괘릉(원성왕릉)의 무인석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또 하나는 종교의 제도화다. 신라 불교는 원효의 화쟁 사상과 의상의 화엄종을 거쳐 대중과 국가 양쪽으로 뿌리를 내렸고, 9세기에는 선종이 지방 호족과 결합해 새로운 사상적 기반이 됐다. 같은 시기 서유럽에서는 수도원이 학문과 농업 기술의 거점이 되고, 이슬람권에서는 마드라사가 세워진다. 종교 기관이 지식과 토지를 함께 쥔 기구로 자리 잡는 현상이 세 지역에서 나란히 진행됐다.

발해를 어디에 넣을 것인가

이 시대의 이름 자체가 하나의 주장이다. 오랫동안 한국사 서술은 676년 이후를 '통일신라'로 불렀고, 발해는 변방의 이민족 국가로 짧게 언급되곤 했다. 이 틀을 처음 정면으로 문제 삼은 사람이 조선 후기 실학자 유득공이다. 그는 『발해고』(1784) 서문에서 고려가 발해사를 쓰지 않은 것을 두고, 발해를 우리 역사로 세우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북쪽 땅에 대한 연고까지 잃었다고 지적했다. 오늘날 교과서가 이 시기를 남북국시대로 부르는 것은 그 문제 제기가 200년 뒤에 받아들여진 결과다.

사료를 보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발해는 일본에 보낸 국서에서 스스로를 '고려 국왕'이라 칭했고, 당은 이를 말갈의 나라로 기록했으며, 지배층은 고구려계이고 다수 주민은 말갈계였다. 오늘날 중국·러시아·한국의 서술이 각각 다른 것도 여기서 비롯된다. 한 정치체의 정체성은 그것을 기록하는 쪽의 필요에 따라 달라진다. 이 사이트가 P3을 남북국시대로 두는 것은 특정 결론을 강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쪽에 통일 왕조가 있고 북쪽과 만주에 또 하나의 국가가 200년 넘게 병존했다는 사실을 연표에서 지우지 않기 위해서다. 사료가 서로 어긋날 때 하나를 골라 나머지를 지우는 대신, 어긋난다는 사실 자체를 보여주는 편이 연표의 몫에 가깝다. 발해 항목을 볼 때 어느 나라의 기록에서 나온 서술인지 함께 확인해야 하는 이유다.

신라 하대는 왜 무너졌나

통일 이후 신라는 100년 넘게 안정을 누렸지만, 8세기 후반부터 급격히 흔들린다. 원인은 외침이 아니라 골품제라는 내부 설계에 있었다. 골품제는 혈통에 따라 오를 수 있는 관등의 상한을 못 박아 두었다. 6두품은 아무리 유능해도 일정 직위 이상 갈 수 없었고, 당 유학을 다녀와 실무 능력을 갖춘 인재일수록 이 벽을 더 뚜렷하게 느꼈다. 최치원이 개혁안을 올렸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은거한 것이 상징적인 장면이다.

능력 있는 사람에게 자리를 주지 못하는 체제는 그 사람들을 바깥으로 밀어낸다. 6두품과 지방 호족이 결합하고, 여기에 조세 수취가 무너지며 889년 원종·애노의 난이 터진다. 이후 견훤과 궁예가 각각 나라를 세우면서 후삼국이 성립한다. 같은 시기 당도 875년 황소의 난으로 무너져 가고 있었고, 유럽에서는 카롤루스 제국이 베르됭 조약(843)으로 셋으로 갈라졌다. 9세기는 유라시아 곳곳에서 큰 정치체가 동시에 분해되던 세기이며, 신라 하대의 혼란도 그 목록의 하나다. 다만 원인은 제각각이었다. 당은 절도사의 군사력이 중앙을 넘어섰고, 카롤루스 제국은 분할 상속이라는 관습에 걸렸으며, 신라는 신분 규정이 인재를 밀어냈다. 무너지는 방식은 그 체제가 무엇으로 지탱되고 있었는지를 드러낸다.

이 시대를 다룬 영화·드라마

영화 컬럼에서 이 구간에 놓이는 대표작은 8~9세기 스칸디나비아를 그린 〈바이킹스〉(2013~)다. 바이킹의 약탈과 항해가 유럽을 뒤흔들던 바로 그 시기, 한반도에서는 장보고가 해상 무역을 장악하고 있었다. 같은 세기의 두 바다 이야기를 나란히 두면 이 시대가 유라시아 양쪽 끝에서 모두 "바다를 통해 부와 힘이 오가던 시기"였다는 점이 선명해진다. 이 구간에 한국사 배경 극영화가 드물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지만, 연표에서는 그 빈자리 자체가 하나의 정보가 된다.

한눈에 보기

연도한국사세계사
676년신라의 삼국통일 완성당의 전성기
698년발해 건국이슬람 제국의 팽창
800년카롤루스 대제 대관
828년장보고, 청해진 설치아바스 왕조의 번역 운동
926년발해 멸망(거란)
936년후삼국 통일 · 고려로

이어서 읽기

참고 자료

사실 관계는 위 자료를 따르며, 비교와 해석은 이 사이트의 것입니다.

이 시대의 다른 사건들도 연표에서 직접 비교해볼 수 있습니다.

연표 탐험하기